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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주택과 한옥

한국 건축물의 역사 - 아름답고 찬란한 건축물

by 나무목수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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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조물(營造物)의 뜻

  영조물이란 가옥 기타 건설물들을 포함하여 인공적 작업으로 지상 지하에 축조된 모든 것을 가리키며 1900년대부터는 공작물(工作物)이라고 한다. 건조물(建造物)은 건설물(建設物)이라고도 하며 건축, 교량, 탑비 등의 인위적으로 구축한 것을 뜻한다. 특히 건축물은 건물 또는 집(家屋)이라고도 하며 건축물, 건물 등의 건자(建字)가 쓰이게 된 것은 1900년대 이후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주로 목조건물을 다루고 이와 유사한 고분(古墳), 탑비 및 조적조건물은 참고적으로 기술한 것도 있다.

2. 건축물의 분류

  건축물은 기능, 용도, 의장, 양식, 재료, 구조, 공법 등에 따라 분류할 수 있고, 또 시대적, 지역적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시대, 지역을 막론하고 인류의 문화가 발생한 제일보는 주거건축이고 다음이 종교 건물과 국가 사회적 공공건물, 생산 건물의 순으로 나타날 것이다. 문화발전과 교통 통신의 진전은 지역 국가 사회를 초월하여 건물을 전문 다양화하게 되었고 국제 교류에 힘입어 대규모의 집회, 휴양 시설 건물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재료 공법에 따른 건물의 분류는 그 주요 구성 재료 구조 공법에 따라 1. 목 재계(木材系), 2. 조적 재계(組積材系), 3. 콘크리트계, 4. 철골계(鐵骨系)로 대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1800년대까지는 목재와 조적 재계가 주로 쓰였으며 특히 목재의 가공, 구조기술이 발달하여 특수한 구조물 외에는 대개 목구조 법에 의하였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 철골구조법은 1800년대 후반 개화기에 도입되어 1900년대 초반에서부터는 서구식 구조법이 성행하게 되었다.

  건물의 용도상으로는 주거건축을 비롯하여 농작물의 저장창고와 공공 국가 기관의 건물 등이 도읍지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건설되었다. 종교 건축은 원시종교인 당집(堂家), 도교적인 사우(祠宇), 불교적인 불전(佛殿) 등이 시대, 문화 발전에 따라 성행하였으며 특히 조선조에서는 유교적(儒敎的)인 사당(飼堂), 향교(鄕校), 서원(書院), 문묘(文廟) 등의 건축도 많이 건축되었다. 특히 불교는 삼국시대 초기에서부터 도입되어 고려조 때에는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불전은 불가의 궁전으로서 그 어느 건물보다도 장엄(狀嚴)하게 꾸미었고 공공건물, 궁실(宮室) 건축에도 크게 영향된 듯하다. 또 우리나라는 지리적 조건에 따른 것도 있지만 외침이 빈번하여 도읍과 지방 고을 수호 시설로서 성벽, 초루(譙樓) 등의 국방시설도 많이 건설되었다. 조선조 때의 객사(客舍), 사고(史庫) 등은 특기할 만한 건축이지만 이젠 그 유구(遺構)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재

3. 목조 건축

  서구식 목조건축술이 도입되기까지는 동양 삼국의 목조건축이 주류를 이루었고 한국의 건축술은 중국의 기술과 제도 등을 따르기도 하였지만 그 나름대로의 개성과 의도로 재편성하는 슬기로움을 보여 한국적인 기법과 의장술을 제시하고 있다.

  목조건축은 동양식 목구조 법과 서구식 목구조 법으로 대별할 수가 있다. 동양식 목구조에서는 한 간살마다에 굵은 기둥을 세우고, 그에 도리와 보를 걸어서 꾸미고 있다. 주심(住心) 이음이 주가 되고 지붕은 큰보에 동자주와 대공을 세워 중도리와 마룻대를 받는 지붕틀을 꾸미는 형태로서 비교적 불안정한 사각형(四角形) 구조부재로 형성된다.

  또 구조부재이면서 의장적으로 꾸미거나 조각한 것도 특이한 것이다. 서구식 목구조 법은 이와는 달리 여러 개의 잔잔한 기둥을 세우고, 큰간 사시에 알맞은 지붕트러스를 짜고 사재를 써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구조재는 감추어지고 수장 재는 따로 꾸며대는 것과 보강 철물의 충분한 응용 등은 동양 건축보다는 더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다.

4. 조적조 건축

  한국에서 쓰인 조적재는 석재와 벽돌이지만 서구식 벽돌의 생산과 그 공법은 개화기 이후에 도입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기와를 굽는 형식으로 생상된 검정 벽돌이 주로 쓰이었다.

  검정 벽돌은 고구려 장군총에서도 발견되었으니 그 역사는 기와에 뒤이어 삼국 초기에서부터 쓰인 듯하다. 기와의 무늬나 문양전의 무늬는 중국 한대(漢代)의 것을 따르기는 하였어도 한국 고구려의 독특한 의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석조로서 현존하는 건축적 축조물은 그리 흔한 편은 아니나 고대의 유구로서 경주 토함산 석굴암과 경주 석빙고(石氷庫)를 비롯하여, 석실고분(石室古墳), 석탑(石塔) 등 많은 유구가 있기는 하나 일반 석조 건축은 거의 없다.

  벽돌조는 대문, 담장 등에 부분적으로 쓰였고, 전탑 등의 축조물이 있다. 건축적인 것은 공주 백제 무령왕릉 등의 고분의 축조와 1700년대에 축조된 수원성의 공심돈은 외벽과 내부 계단 일부는 전돌로 쌓고 위에 목조건물 1층을 세운 것이 있다.

  남한산성(南漢山城, 경기도 광주군) 동문(東門)의 석축 홍예 내부는 벽돌조의 순 아치볼트로 축조하고 있다. 그 축조 접착재는 석회토 반죽을 사용하였다.

  조적조에는 원초적이기는 하지만 토조(土造)를 들 수 있다. 이것은 근래에 시도한 바 있는 흙벽돌(土壁乭), 날 벽돌)을 쌓아서 벽체를 축조하거나, 벽의 좌우 옆에 넓은 널판을 대고 속에 진흙을 이겨 다지어 벽체를 축성하는 토담집도 있다.

  조적조로서 특이한 것은 얇게 쪼개지는 점판암, 현무암을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축조한 석탑이 있다. 이 탑을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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